[기자수첩] 마지막 기회 놓쳐선 안돼
파이낸셜뉴스재팬 백수정 기자
“귀국사업이 진행된 지 65년이 지났습니다. 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한 관계자는 92세입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기회를 얻게 된 것, 그리고 네트워크 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 요시이 카즈요시 BSN니가타방송 제작부장
지난 3월 13일 ‘JNN네트워크협의회상’ 수상식에서 BSN니가타방송이 제작한 ‘일본인 배우자 오하라 요시코 씨의 경우-『日本人妻 大原芳子さんの場合(2023.12.29.)』’가 ‘대상’을 수상했다. 1959년에 시작되어 니가타 항에서 배가 출발한 ‘귀국사업(재일동포 북송사업)’에 대해, 일본에서의 차별에 고통받아 북한으로 건너간 재일조선인 남편과 니가타에 남기로 결심한 일본인 아내, 이 두 사람의 뒤바뀌는 운명을 그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JNN 네트워크 협의회상은 일본의 주요 방송 네트워크 중 하나인 JNN(Japan News Network)이 주관하는 상이다. 이 상은 JNN 네트워크 내(TBS 도쿄 방송 시스템) 28개국에서 뛰어난 뉴스 보도나 프로그램을 선정하여 시상하며, 우수한 저널리즘과 보도 활동을 장려한다.
제작에 참여한 다카야나기 토시오 교수(호세이대학)는 “이야기를 다소 단순화한 면은 있지만, 60년 이상 묻혀 있던 작품을 발굴하고, 많은 사진·영상과 증언을 통해 북한 귀국사업을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되돌아보려 한 점에서 훌륭한 작품이다.”라고 설명했다.
재일동포 북송사업은 북한과 일본 적십자가 체결한 ‘재일동포 북송에 관한 협정’에 따라 1959년부터 1984년까지 북한과 조총련, 일본 정부에 의해 재일동포들이 북송된 사건이다. 일본 법무성 입국관리국 자료 등에 따르면, 북송된 재일동포와 그의 가족을 포함한 총 인원수는 9만 3340명으로 그중 일본 국적자는 약 6800명(일본인 아내 1830명으로 추정)이다.
1960년대부터 북송사업에 직접 관여했던 당사자들의 북송에 대한 비판을 담은 회상록, 수기 등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송사업이 끝난 80년대 후반 이후에도 북송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논고와 저서들, 북한을 지지하는 조총련 관련 저서에 비해 눈에 띄지 않았다. 또한, 1970년대까지는 사회주의에 대한 기대감과 환상이 강하게 남아 있었던 분위기였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은 ‘반공 이데올로기’로 여겨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일 간의 국교 정상화에 따른 한일관계 연구에서 북송사업에 관련된 연구가 다뤄지기 시작했으나 공개 사료가 적은 점 등으로 내용 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일본 내에서 본격적으로 북한에 대한 비판적인 신문 또는 잡지 기사, 서적 등이 많이 나오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는데, 2002년 9월에 실시된 고이즈미 전 총리의 평양 방문 시, ‘북일평양선언’에서 김정일이 ‘일본인 납치사건’을 인정한 것이다. 그 후 1990년대 후반에 탈북한 일본인 배우자들 및 가족들에 대한 기사가 2002년 11월에 전국지 기사로 보도되면서 탈북자들에 대한 취재도 급속히 늘어났다.
이렇게 북송사업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 전 총리의 평양 방문에서의 일본인 납치에 대한 김정일의 인정과 사죄를 받아냈다는 것, 각 미디어에서 ‘북송사업’에 대한 의제(아젠다)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보도했다는 것, 전문가들이 논증을 위해 각 데이터와 자료를 활발히 발굴해 낸 것과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와 자료들을 기반으로 양질의 BSN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된 것이고 사회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아 같은 계열사의 방송국에서 몇 차례에 걸쳐 방송되었다. 이것은 ‘북송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유지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 벌써 74년이 지났다. 그 동안 남북 간의 회담도 몇 차례나 있었다. 그러나 납북자, 억류자, 국군포로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었다. 주요 미디어에서도 중요시하지 않았다.
지난 3월 24일 제14회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납북자, 억류자, 국군 포로를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발언했고, 7월 14일은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 날’이었다. 통일부에서 작년부터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하기 시작했고, 탈북자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체험담을 이야기하거나, 개인적으로는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서 북한의 실상을 전하고, 무엇보다 북한인권 NGO 단체의 꾸준한 활동으로 인해 예전보다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쉬운 분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정전협정 당시 유엔군 사령부는 국군 포로와 실종자 수를 8만 2천여 명으로 추산했다. 이는 북한이 정전협정 이후 돌려보낸 8천여 명의 10배로, 그들이 1951년 6월에 발표한 전과가 사실이라면 무려 7만여 명의 국군 포로가 돌아오지 못한 셈이다. 정전협정 후 탈북하여 귀환한 국군 포로는 모두 80명이었으나, 현재 생존자는 9명이고 대부분 90대 이상의 고령이다. 우리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백수정 기자 sjbaek@fnnews.com
